요즘 주변에서 돈 얘기만 나오면 다들 원달러 환율 얘기부터 꺼냅니다. 해외 주식에 투자한 친구는 환차익에 웃고 있지만, 미국에 유학 보낸 자녀 학비 때문에 허리가 휜다는 지인도 있습니다.
저 역시 수입 원자재를 다루는 작은 사업을 하고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 환율 창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쉬는 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달러당 1460원을 넘나드는 지금, 이건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생존의 문제가 되어버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의아해합니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 때처럼 망한 것도 아니고, 경상수지 흑자는 사상 최대라는데 왜 원달러 환율은 미친 듯이 오르기만 하는 걸까요? 심지어 전문가들은 1998년 외환위기나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지금 상황이 더 구조적으로 심각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제 경험과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속 시원하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고착화된 고환율, 위기 때보다 높다
사상 최대 흑자라는데 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한국은행 발표를 보면 올해 3분기까지 누적 경상수지 흑자가 827억 7000만 달러에 달합니다. 수출로 달러를 이렇게나 많이 벌어들이고 있는데, 상식적으로 원화 가치는 올라가야(환율 하락) 정상 아닐까요?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2025년 들어 원달러 평균 환율은 1415원을 넘어섰는데, 이는 외환위기 시절인 1998년(1394원)이나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1276원)보다도 높은 수치입니다.
국가 부도 위험을 보여주는 CDS 프리미엄도 매우 안정적인 수준인데 말이죠. 과거처럼 외국 자본이 갑자기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위기 상황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환율이 이 모양인 것은 우리 경제의 수급 구조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는 강력한 신호입니다.
원화 약세의 구조적 원인들
1. 달러 가뭄 현상
문제의 핵심은 바로 ‘달러 가뭄’입니다. 벌어들이는 달러보다 빠져나가는 달러가 훨씬 더 많아졌다는 의미죠. 범인은 놀랍게도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 서학개미의 역습
코로나19 이후 개인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투자는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서학개미’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였죠. 지난달에만 개인 투자자들이 사들인 미국 주식이 68억 달러에 달한다고 합니다. 너도나도 원화를 달러로 바꿔 미국 주식을 사니, 국내 외환시장에서는 달러 수요가 급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역시 최근 환율 움직임이 대부분 국내 거주자의 해외투자에 좌우됐다고 언급했을 정도입니다. -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우리의 노후를 책임질 국민연금도 달러 수요를 부추기는 큰손입니다. 기금 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해외 주식 및 채권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는데, 그 규모가 현재 580조 원에 달합니다.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는 장기적으로 필요한 전략이지만, 단기적으로는 외환시장에서 거대한 달러 매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 기업들의 해외 직접투자
삼성, 현대, SK 같은 대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짓는다는 뉴스, 많이 보셨을 겁니다. 미국과의 무역 협정 등으로 인해 대미 투자가 늘어나면서 기업들의 달러 수요 역시 엄청나게 증가했습니다. 국내에서 벌어들인 원화를 달러로 환전해 해외에 투자하니, 달러는 계속해서 밖으로 흘러나가는 구조가 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개인, 연기금, 기업 등 모든 경제 주체가 한 방향으로 해외 투자를 늘리면서, 한국은 사상 최대 경상 흑자에도 불구하고 만성적인 달러 부족 국가가 되어버린 셈입니다.
10년 전만 해도 마이너스였던 순대외금융자산이 지금은 100배 가까이 늘어 1조 달러를 넘어섰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2. 펀더멘털의 차이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바로 한국과 미국 경제의 기초 체력, 즉 펀더멘털의 차이입니다.
한양대 이정환 교수는 현재의 고환율이 “한국 경제의 성장률 하락을 되돌아보라는 신호”라고 지적합니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 아래로 떨어졌지만, 미국은 AI 기반 신산업 혁신으로 오히려 성장 잠재력이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성장 가능성이 더 높은 곳으로 돈을 옮기게 됩니다. 성장률이 높은 쪽이 금리도 높을 수밖에 없으니, 만성적인 한미 금리 역전 현상도 달러 유출을 가속화하는 요인입니다.
정부 대응의 한계와 시장의 냉담한 반응
국민연금 등판? 미봉책일 뿐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겠죠. 지난 14일, 외환 당국이 강력한 시장 개입 의지를 밝히며 구두 개입에 나섰습니다. 덕분에 1475원까지 치솟던 환율이 1450원대로 잠시나마 안정을 찾았죠.
하지만 시장은 이를 ‘늑장 대응’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오히려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좋은 값에 달러로 환전해서 빠져나갈 기회만 만들어줬다는 비판까지 나옵니다.
외환 당국은 서학개미가 일으킨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국민연금을 구원투수로 등판시키거나 달러를 보유한 수출 기업들의 환전을 유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국민의 노후 자금을 환율 방어에 동원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거대한 시장의 흐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솔직히 말해 단기간에 원달러 환율이 예전처럼 1200원, 1300원대로 돌아가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구조적인 요인들이 너무나도 복합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내년에도 미국의 자금 이탈 현상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고,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웃도는 흐름을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한국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라는 강력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서학개미를 탓하고 국민연금을 동원하는 단기적인 처방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국내 투자 매력도를 높여 돈이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고 안에서 돌게 만드는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합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경제 구조 개혁과 규제 완화 등을 통해 기업들이 해외가 아닌 국내에 투자하고 싶게 만들어야 합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섣부른 ‘영끌’ 달러 투자는 지양하되, 자산의 일부를 달러로 보유하며 위험을 분산하는 전략이 필요해 보입니다.
당분간은 지금의 고환율이 ‘뉴노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각자의 상황에 맞게 현명하게 대처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